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기술, 철학의 위안

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가치관이 당연한 듯 자라왔습니다. 특히 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무엇이라도 열심’인 삶을 살아왔기에, 휴식이나 쉼 등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당연’하고,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 되면서, 우리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 =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p.18)’의 도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행위 뿐만 아니라 학벌, 외모, 직업 등 사회적인 요소들도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좌우하는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목이 무엇이든, 무언가를 ‘해야만’ 혹은 ‘갖추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고 또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적 사랑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이유는 언제든 외부 사정에 의해 흔들릴 수 있고 영구히 유지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를 ‘결함이 있다’며 평가하는 마음을 달라지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내면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사라지기 힘듭니다. 그래서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외부에서 사랑을 구하기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근본적인 해답이 되겠지요.

‘나에 대한 느낌’은 나의 장점보다 내가 숨기려 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나의 단점과 더큰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면을 고루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첫걸음인 셈이지요.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감정’은 억압하는 대신 잘 살펴보아주고, 타인의 비난 속에서는 스스로의 무의식적 믿음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느낌을 변화시켜야만 자신을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저 역시 아무 흠이 없는 사람에게 끌렸던 게 아니었습니다. 흠이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부족한 면임을 인정하고, 필요할 땐 밖으로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는 가혹했을까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니, 생각만 해도 덩달아 편안해지는 느낌인데 말입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기술

‘마음이나 생각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지혜는 사실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꼭 고대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마 교과서를 통해 배워 대다수가 알고 있을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바로 그 예이지요. 동서양의 많은 지혜 있는 이들의 깨달음이나 한때 문화적으로 지배적이었던 ‘긍정적 생각’도, 그리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기술>에서 다루고 있는 인지치료 기법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바뀌면 내가 느끼는 감정도 바뀐다는 것이거든요. 물론 이들 사이에는 차이도 있습니다.

인지치료는 ‘감정은 외부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 해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는 것인데, 이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긍정적 생각이나 수련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인지치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 중 비합리적인 것에 대해 명확한 논리를 근거로 그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비현실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들은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드시 모든 것을 잘 해야해’, ‘사람들은 내게 항상 친절하고 공정하고 정중해야 해’,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어야 해’ 등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러할 수 없는 일들에 ‘당위’를 부여해버리면 비현실적인 이상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을 바탕에 두게 되면, 삶에서 겪는 역경을 아주 끔찍한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슬프다’, ‘힘들다’, ‘나쁘다’ 등으로 느껴질 만한 일들을 ‘끔찍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를 두고 ‘끔찍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감정적 좌절을 초래하며 일상과 관계 등 삶의 다양한 면에 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이러한 상태에서 조금 더 건강한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인지치료에서는 현실을 이전과 달리 바라보기를 권유합니다. 객관적으로, 건강한 비교를 통해, 열린 마음으로, 건설적으로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비합리적 신념 발견하기 – 비합리적인 신념을 검토하기(맞서기) – 합리적인 신념 세우기’의 인지치료 방법을 제시합니다. 사랑, 건강, 좋은 인간관계, 많은 돈, 지위, 성공 등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 아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랄까요.

저자가 이야기 했듯 이것이 익숙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겐 ‘필요’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저 ‘있으면 좋겠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인식하게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욕구가 필요가 된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자가 말하듯 인지치료의 목표처럼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즐기는 사람(p.91)’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단 무엇보다 스스로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적 문제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중 이런 삶을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마 지금 겪는 문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철학의 위안

평소 고전이나 철학 관련 책은 별로 읽지 않았어서 <철학의 위안>이라는 제목을 보며 ‘과연 내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 그리고 개인적인 고민과도 맞물려있는 ‘신의 섭리’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세계 3대 옥중 문학 중 하나라는 이 책은 로마 시대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보에티우스’가 누명을 쓰고 유배되어 감옥에 갇혀있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저자의 배경을 반영한 듯 철학과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선하고 고결하게 살아온 나에게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하는 한탄에서 시작하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도리어 자신의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성찰하게 되는 내용과 전개 방식은 마치 구약성경 ‘욥기’에서의 욥과 신의 대화를 보는 듯하였습니다. 이 책이 감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문스럽기도 하고 마음의 짐처럼 다가왔던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보에티우스부터 소크라테스, 사도바울, 빅터 프랭클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보에티우스처럼 자신의 믿음에 대한 검증과, 최고의 선이자 섭리의 주체인 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더더욱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선과 악에 대한 그의 논증은 저자 자신의 감옥에서의 시간이 그에게 ‘악’으로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증이 현실화된 모습을 보는 듯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거나 소망하는 것들 중 우리가 처음부터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나 ‘선과 악, 인간과 행복, 그리고 신에 대한 논증’ 등 보에티우스의 논증을 따라가며 평소 가지고 있던 저의 생각도 돌아보게 되었구요.

기술과 환경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빠르고 굉장하게 발전하였지만, 인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는 과연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히려 예전 철학자들의 사유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과제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만큼,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 권력, 명성 등이 아님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구요. 기록된 지 천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지혜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