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수비학,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기탄잘리

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수비학

정초가 되면 사주팔자나 흔히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점을 믿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운명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생적인 운을 맹신하기 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이나 운명을 역행하고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긴 하다. 우리 주변에 항상 따라다니는 생, 시 특히 사주나 궁합을 볼때 꼭 묻고 대답하게 되는 생년월일, 탄생한 시(時)는 지신의 인생을 점지는 데  숫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역설한다. 이 책이 끌리게 된 중요한 이유는 행운의 숫자라는 부제! 특히 운명을 바꾸는 행운의 숫자에 대한 이야기, 당신의 숫자가 따로 있다는 스토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기다린 이 책을 처음 받아봤을때 큐브와 같은 그림에 묘하게 조합한 숫자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숫자 비밀에 대한 해결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설레임을 가득 안고 내게로 왔다.


목차를 읽었을때 1부터 9까지의 숫자의 신비함이 느껴졌고, 숫자와 관련된 내용이 부록처럼 나와 있는 듯하였다. 나의 숫자는 무엇일까? 배우자와의 숫자 궁합을 맞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첫 장을 넘겼다.


책 제목인 [수비학]이라는 학문이 생소했는데 인간 행동의 열쇠로서 사용하는 숫자를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 수비학이다. 심지어 수비학은 인간 성격의 깊이를 재는 학문의 근거를 숫자에 의존해서 밝히는 것이다. 이 첫줄을 읽자마자 수비학이라는 학문에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세가지 숫자(사이킥, 데스티니, 이르몌)가 있는데 어렵지도 않은 숫자라서 어느새 나도 직접 대입해보고 재미삼아 남편도 적용하고 나만의 숫자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목차에서는 1부터 9까지의 숫자에 대해 나와 있었다. 그리고 0(제로)는 숫자에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따로 언급이 있다. 제로는 혼자서는 의미가 없지만 다른 수와 결합했을 때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좋은 의미만 갖지 않은 0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기이했다. 숫자를 이해하는 학문이기에 짝수와 홀수의 가장 단순한 의미부터 정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가지 숫자(사이킥, 데스티니, 이름)를 정의하면서 융화적인 숫자를 언급하고, 더욱이 신성함으로 느껴지는 신화와 비교함으로써 매력적인 숫자에 더욱 다가가도록 한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책의 표지는 제목 옆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또한 책의 띠지는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문장과 함께 타임 선정 2016년 올해의 책 10에 선정되었다고 소개해주고 있다. 과연 건강한 성교육과 젠더 평등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책장을 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여성이 상품화 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흐름 속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집단을 이루고 있는 남자그룹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여성의 상품화가 더 고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아들로 여자를 바라볼 때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외형적인 그리고 성적인 이미지로 바라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은 왜 페미니즘인가 물었을 때에는 그것 아니면 안 되기에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성들이 내면을 가꾸는 것보다 왜 그렇게 외모를 가꾸고 몸을 엉덩이를 육체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여성들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남자들로 인해 점점 시대는 성적 지향의 시대로 가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시대가 변태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과연 이렇게 시대가 흘러 5년 뒤 10년 뒤에는 어떤 변태적인 일들이 일어날까 걱정 반 염려 반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시대 속에서 우리도 이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가는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게 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새로운 성교육 또는 인성교육이 이뤄져야 할 시급함을 깨닫게 된다. 절감하게 된다.

결코 어떤 인간도 자신의 몸을 상품화해서 인간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외침이 별 의미 없고 영향 없는 외침일 수 있어도 우리의 아름다움은 점점 늙어가는 외모에 있지 않고 날마다 더 아름답게 빛날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기탄잘리

‘기탄잘리’란? ‘님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뜻으로, 타고르에게 ‘님’은 사랑과 기쁨의 대상인 신이고 연인이며 만물에 내재한 큰 자아라고 소개해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형언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신과 연인 그리고 만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노래 또는 시를 통해 과연 ‘당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일체의 타자를 향해 타고르가 바치는 마음의 궁극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당신’을 향한 사랑의 노래는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을 제공했기에 그리고 ‘당신’에 비해서는 초라하고 비참한 자신을 사랑해주었기에 노래하고 또 노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타고르 안에는 어떠한 교만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당신’을 향해서 말이다. 자신을 향해 언제나 넘치도록 채워주는 ‘당신’은 부르고 또 불러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다.

자신의 존재가 ‘당신’을 노래하기 위함이라는 타고르의 시는 연인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고 ‘당신’이라는 신 또는 절대자를 향해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이 있기에 자신이 있고 그러므로 자신은 ‘당신’을 위하여 존재하며 ‘당신’이 나를 채워주지 않으면 결코 타고르의 가슴은 마음은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표현 그리고 절제된 사랑의 감정이 이 시의 큰 매력이다. 왜 예이츠가 그토록 감탄했는지 알 것 같다. 어떤 서양의 시인들보다 사랑을 더 깊게 그리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이 시집은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당신’을 향한 사랑을 그리고 ‘당신’이 주신 사랑이 깊고 진하게 배여오고 있다. 그 속에는 배신도 없고 아픔도 없고 어떤 악함도 없다. 다만 ‘당신’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신’을 향해 더 가까이 나가고 싶어하는 간절함만 찾을 수 있다 .

구도자의 삶이 이와 같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당신’이 누구인지 시인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우리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지 않을까. 감사하는 마음을 12월에 더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시인 것 같아 기쁘다.